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생존주의/식수와 식량 (문단 편집) == 식량 자급자족 (치안 확보시) == 아래 문단은 약탈자가 없거나, 약탈자를 자기 힘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다룬다. 전쟁, 불황, 나쁜 기후, 판데믹 등이 겹치면 치안이 확보되는데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에 지장이 생겨 식량이 부족할 수 있다. 식량 때문에 전쟁이 발발한다는 [[식량전쟁]]은 현실성이 없지만 불경기-공황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영국은 2차 대전 이후로도 50년대까지 배급제를 유지하며 텃밭을 통한 자급자족을 강조(DIG FOR VICTORY)했다. 고기, 설탕, 우유, 계란 등이 소량만 배급되고 암시장에서는 금값이 되었다. 그래서 해당 재료들을 자급자족하거나 대체하는 레시피가 인기였다. 과학자들은 수중에 있던 [[시궁쥐|실험용쥐]]를 키워 배급식량과 함께 먹었고, 사람들은 설탕 대신 [[당근]]을 먹었다. 당시에 어류와 과일 등 배급품목에 들지 않는 음식도 있었지만 복숭아 하나에 7실링 6펜스, 포도 한 송이에 1파운드 5실링이라는 무지막지한 가격을 자랑했다. 전시 식당들은 1끼 5실링으로 가격상한제가 걸렸고 비영리기관이던 공동배식소는 1실링으로 고기+야채+디저트+차를 먹을 수 있었으니, 복숭아 1개가 1끼보다 훨씬 비쌌던 셈. 그래서 과일까지 직접 키우곤 했다고. 영연방의 식량공급원 중 하나였던 캐나다도 배급제를 못 피했는데, 케이크를 만들 때 생크림 대신 크림치즈를, 우유 대신 '''통조림 토마토 수프'''를 쓰기도 했다고. 통조림 제조사인 캠벨은 아예 공식요리집에 이걸 포함시켰다. 구소련은 다차([[별장]])가 중요한 식자재 공급원 역할을 했다. 굶주렸다기보단 경공업 미비와 농업집단화 등으로 귀해진 신선식품을 쉽게 얻는 게 목적이었는데... 소련이 붕괴하면서 헬게이트가 열리는 통에 진짜 중요한 식량공급원이 되기도 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98/nwdesk/article/1775385_30723.html|1998년 러시아에서, 연금이 끊겼지만 자급자족하는 노인에 대한 기사]]. 연금도 끊겼고 돈 한 푼 없지만 3[[헥타르|ha]][* 30,000m^^2^^ = 9,075평. 가로 100m, 세로 300m쯤으로 상상해보면 된다.]의 밭과 소 3마리, 돼지 6마리로 필요한 것을 얻어 생활했다고 한다. 장작은 주변 숲에서 죽은 나무를 주워와 얻고, 식량은 직접 키운 감자와 야채(피클)를 저장했으며, 도구는 스스로 제작. 그 외 필요한 밀가루, 버터 등은 소를 잡아 물물교환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베네수엘라는 정치인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중산층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정부가 배급제를 선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배급제로 최소한의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챙겨준다 해도[* 영화 [[컨테이젼]] 등 미국 재난물에서 흔히 나오는 클리셰가 비상식량(심하면 밀가루와 식용유만)을 던져주는 정부의 모습이다. 물론 사람들은 그마저도 모자라 서로 빼앗으려고 난리를 친다.],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준은 안 된다. 기호품이나 신선식품은 재난에 따라서는 아예 배급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처럼 배급권한을 가진 시민대원이 "우리 친구 우선 배급"이라며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취미의 확장으로 주말농장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많고 친환경 유기농 채소를 직접 재배해서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으므로 자연스럽게 대비할 수 있다. 만일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텃밭이 있거나 시골 지역이면 취미와 생활비 절약을 겸해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러 볼 수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